독특한 어법과 화법으로 행복을 전도하였던 최윤희가 자살하였다는 기사가 났다. 행복하게 살자고 줄창외치던 사람이 자살을 하였다는 것이 순간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자살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최선의 길이었다면 그것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자살 소식에 다시 한번 자살에 대한, 특히 지적 자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말하는 지적 자살은 Jo Roman이 지은 Exit House (http://www.amazon.com/Exit-House-Jo-Roman/dp/0553370251/ref=sr_1_2?ie=UTF8&qid=1286546297&sr=8-2)을 범우사에서 최현씨가 지적 자살 (http://www.bumwoosa.co.kr/shop/index.php?modea=pd_view&id_no=1891)이라는 제하로 1990년대 초에 번역 출간한 책에서 따온 것이다. Jo Roman은 이 책에서 100쪽 안팍의 분량으로 불치의 암을 선고받은 한 여자가 자신이 왜 자살을 선택하였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담담히 풀어내었다. 요즘은 Rights-To-Die(안락사(?))라는 용어로 스스로 죽을 권리를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1990년대 초에 이러한 주제로 책을 펴냈다는 것이 대단하기만 하다.
요즘 많은 유명인들이 자살로 운명을 달리하였지만, 대게 그들은 불치의 병에 걸렸다기 보다는 대중에게 쉽게 말하기 힘든 정신적인 문제로 고민하다 자살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극복 가능한 정신적 물질적인 고통, 물론 극한의 정신적 물질적인 고통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토록 하지만,에 의한 자살보다는 극복할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 한번 생각케 해 준다.
뷸치의 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았을 경우 대개 우리는 1) 기존 의학이나 대체 의학의 힘을 빌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2) 덤덤히 병을 받아들이고 더 이상의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두 가지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 않은 일이다. 기존 의학이나 대체 의학에 의존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환자 본인 스스로 강한 의지와 살려는 희망을 가지며 치료 과정의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이겨내야 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언제 그 죽음이 다가올런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병의 고통을 인내하여야 할 것이다.
지적 자살은 바로 이 죽음을 받아들였다는 가정하에 자신과 남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들어주는 최선의 방법이자살 또는 안락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을 마감하는 방법이 외로이 혼자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자신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유를 공유하고 하고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럴 경우 현행법 상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지만,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끔하는 대목이다. Jo Roman은 자신이 책에서 자살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자살을 선택할 사람이 과연 자신이 자살을 선택한 당위성이 있는지를 물어보게끔 하는 것이다. 자살을 선택하기 전에 왜 자살을 해야하는지, 자살의 의미가 우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케하는 것이다.
최윤희씨의 자살이 그녀가 줄 곧 외쳐온 행복의 한 방법이었으면 한다. 그녀의 남편도 같이 그녀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최소한 그녀 부부는 그 죽음의 순간이 행복하지 않았을까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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